예배가 회복되면 하늘문이 열린다 / 왕상 18 : 30 -40 | 1199 | 2015-0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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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속에서 부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가 뭐 그래 내가해도 그 정도는 하겠다 투덜거리니까 부인 집사가 하는 말 성가대는 어떻고요 도대체 연습을 하고 선건지 만건지 오늘 은혜안되 혼났어요 라고 투덜대자 뒤 좌석에 있던 아들이 천원짜리 예배드렸는데 뭘더 바라세요 어제 극장에서 영화는 재미 있었잔아요. 천원짜리 예배가 얼마나 감동적이겠어요 오늘 본문은 참 예배가 무언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북 이스라엘은 3년 반 동안 가뭄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3년 반 동안 비가란 방울도 오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온 땅은 흙먼지만 날리고 논과 밭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 습니다. 왜 이런 가뭄이 수 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습니까 ? B은 바로 아합 왕과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제단을 훼파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니님이면 그를 좇을 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참된 예배는 1. 예배는 한 쪽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세상의 거짓된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양 다리 걸친 신앙입니다. 갈멜산에는 엘리야와 이방신의 제사장만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을 갈멜산으로 모이라고 했고, 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신을 증명하는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거대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의 형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엘리야는 말합니다. "두사이에서 언제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 ?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던지, 아니면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던지 좇으라" 고 했지만 백성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여전히 중간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었이 참신인지 거짓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를 좇을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누가 참신인가를 보러 온 것입니다. 아직 이 땅 가운데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참된 것인 줄 알고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양쪽 사이에서 세상을 쫓아 살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고 살기도 하는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것, 자신을 이 땅에서 풍요하게 해 줄 수있는 세상의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서 그것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엘리야는 그들의 머뭇거림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들을 결단하지 못하는 그들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에 대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증인으로그 갈멜산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엘리야는 참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참신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형제자매를 보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는 아무나 설 수 있는 자리기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엘리야가섰고, 또한 그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서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두마음을 품는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한자가 될 수 없습니다.(약1:8, 약4:8, 시119:113) 2. 예배는 정해진 장소로 나오는 것이다. 주의 종에게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정해진 장소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곳으로 나와야 합니다. 술집에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절간에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갈멜산은 하나님의 제단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로 나와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건축된성전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제단에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아산에서 나오고 창원에서 나오며 대구에서 오는 것입니다. 창원보다 더 멀리 간 사람은 교회 옮겨도 됩니다. 3. 참된 예배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것이다. 아합이 왕이 된 후 이세벨이 등잔하면서 갈멜산의 제단은 무너졌습니다. 엘리야는 다시 무너진 갈멜산의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흩어진 열두 돌을 다시 세웠습니다. 열두 돌은 야곱자손의 열두지파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3년6개월 동안 하늘 문이 닫혀버린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무너진 제단 ? 나에게 있어 무너진 제단? 다시 쌍아올려야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비가 내립니다.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화와 복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신 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애 3:38,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늘문이 열리는 것은 예비회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비유 맞추며 상아야 합니다. 4. 참된 예배는 제단에 물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왕상 18 : 33 - 35)"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 물과 나무위에 부으라 하고(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하여 세 번 그리하니(35)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열두 돌로 제단을 수축한 엘리야는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나무 위에 송아지를 각을 떠서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행동을 지시했는데 네 개의 통에 가득 채워 세 번씩이나 제단의 주위까지 흠뻑 젖은 상태였습니다. 사람이 불을 붙여도 제물은 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즉 자연적인 상태로는 도저히 불이 붙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제물이 불탈경우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엘리야의 확신을 고백하는 행위인 동시에 모인 백성들에게 핑계 댈 수 없는 분명한 증거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제의한 것이 무엇 이었습니까 ? "똑같이 송아지를 제물로 드리고 그 제물에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요 하나님이다" 는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 엘리야의 제의였습니다. 26절에 보면 거짖 선지자들도 송아지를 잡아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똑가튼 송아지 제물을 드렸지만 33절에 엘리야가 드린 제물은 번제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벤제물 제사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불이 사람의 힘으로 일으키는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지는 불로 제물을 태워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처음부터 번제 제사를 드리므로 반드시 번제물에 불이 임할 것을 믿고 드린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물을 번제 제물에 붓는 것은 무었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의 분명한 역사를 증거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우상 앞에 절하고 거짓의 가르침에 순종하였스비다. 물은 곧 말씀을 의미합니다. (엡5:26)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단에는 말씀의 순종한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말씀의 순종함이 없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는 형식과 외식적인 제사는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비밀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충만한 제단만이 하나님의 불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5. 참된 예배는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떳다. 참된 예배의 결과 3년6개월 동안의 마른땅에 하늘문이 열렸습니다. 우리에게뭄이 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하늘문이 열립니다. 예배회복으로 하늘의 축복의 비가내려오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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