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인가 축복인가 ? / 출애굽기 2 : 1 - 10 | 1199 | 2014-1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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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민족이 에굽에 내려간지 400년이 지났고 요셉은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 하면서 왕은 고민을 뛰어넘어 위기의식까지 느끼면서 히브리인들의 인구제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히브리 민족은 여전히 번성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궁궐은 긴장감이 돕니다. 이유는 바로의 일차정책인 히브리민족에게 고된노역을 시키면 인구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더욱더 번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차 정책인 산파를 통해서 죽이라는 정책도 실패하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바로는 공포하기를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직접 죽이라 만일 죽이지 않으면 삼족을 멸한다. 는 왕의명령이 공포됩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아이를 죽여야 합니다. 압박받는 피민족의 서러움입니다. 부모가 어떤 자식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 차마 죽일 수 없어서 히브리인들은 나일강에 아이를 물에 띄우 면서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이아이가 살아남기를 원했고 에굽인들 중 자식 없는 사람에게 입양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가운데 1절 말씀처럼 이때 레위지파의 남자와 레위지파 여인이 결혼을 했습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 지파입니다. 성경에서 레위인 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 라는 말입니다. 결혼한 여인은 요게벧 이라는 여인입니다. 요게벧은 임신되었을때 그 는 딸을 달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딸이 아닌 아들을 주셨고 기쁨이 아닌 슬품으로 매일 매일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들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몰래 3개월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바로의 정책이 바뀌기를 원했고 부모는 노역에 나가고 아이의 형과 누구나 돌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루 하루 살 어름 판을 걷는 것처럼 살고 있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서 더 이상 집에서 키울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어미의 마음.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버렸다는 아품 속에서 아이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시키기 위해 요게벧은 갈 상자를 역고 역청을 바릅니다. 요게벧은 지금 사랑하는 아들의 관을 짜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노역에 나가기 전 요게벧은 아이에게 마지막 젖을 먹이면서 지켜주지 못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젖을 먹이지만 아이는 옹알이를 하면서 엄마의 눈을 맞추며 웃고 있을 때 어머니 요게벧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나일강은 아침마다 통곡과 절규의 울부짖음이 퍼지는 죽음의 강 저주의 강 희망이 사라져버린 강이 되어 버렸습니다. 분명 히브리인들에게는 나일강은 저주의 강이었습니다. 당시에 히브리 민족의 장정이 에굽에서 나올 때 60만명 입니다. 장정 60만명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가임여성 아이를 낳을 수 여인들도 60만명으로 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히브리 여인들은 나일강에서 통곡하면 사랑하는 자식을 강물에 뛰우는 일은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예인 민족, 힘이없는 민족 이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버려야 그나마 그 가족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 라고 애써 자신들에게 위러하지만 어디 쉬운 일입니까 ? 그러나 살아있는 가족이라도 살려야지요. 하나님께서 몸부림쳐 땅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딸이 아닌 아들 주셔서 그러니 내 책임보다 하나님의 책임도 있지 않겠습니까 ? 요게벧은 눈물로 사랑하는 아들을 갈대상자에 넣어서 강물 하숫가에 같다 놓습니다. 요게벧은 사랑하는 아들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버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게벧의 눈물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요게벧에게 다시 웃게 해주시고 싶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게벧은 아침에는 슬품의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강물에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요게벧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녁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아침에는 나일강에 노예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게벧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녁에는 왕자를 품에 않게 하셨습니다. 요게벧은 아침에는 슬품의 눈물로 젖을 먹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게벧에게 저녁에는 기쁨의 눈물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일강은 분명 히브리 민족에게는 죽음의 강이요. 절망의 강이요, 비참한 강이요.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린 강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일강을 생명의 강으로 바뀌셨습니다. 희망의 강으로 바꾸셨습니다. 미래의 강으로 바꾸셨습니다. 분명 이 아이는 노예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족의 해방자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그가 모세입니다. 하나님은 요게벧의 기도를 들으시고 목욕하러 하수가에 내려왔던 공주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공주응 아이가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가셨스비다. 하나님은 바로의 공주에게 긍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얼마든지 히브리 아이다 버려라 재수 없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공주를 통해서 아들을 삼게 만드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게벧이 사랑하는 아들은 버렸어도 기도는 포기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요게벧을 다시 웃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게벧의 환경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음식이 달라졌습니다. 노예의 음식을 먹던 그가 궁중음식을 먹었습니다. 왕자를 키우니까 ? 의복이 달라졌습니다. 노예 옷을 입던 여인이 궁궐의 공주가 입는 옷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궁궐에 감히 히브리노예가 어떻게 자우롭게 들어갈수 있습니까 ? 보호받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죽이러 다니던 군사들이 지켜주는 가정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다른 히브리 여인들은 자식을 죽여야 하는데 요게벧은 내 자식을 키우면서 돈받고 키우고 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세민교회 성도 여러분 ! 극동방송 가족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생을 위해 죽음의 십자가에 내 놓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졌습니다. 저주에서 축복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의 종노릇하던 노예에서 하나님의 아들딸로 바뀌어졌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은 기도 할 때입니다. 기도가 사는 길입니다. 새벽기도와 저녁 기도회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지난주 설교처럼 사도행전 12 : 5 베드로는 옥에 갖혔고 교회는 그를 위해 기도하더라 . 요즘은 바쁘고 피골한 시대입니다. 새벽과 저녁 두 번다 나오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둘 중 나오시기 좋은 시간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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